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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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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산에서의 일주일 - 푼힐, 안나푸르나 트레킹(4)















4월 19일

고레빠니>푼힐>고레빠니>타다빠니

 벽 네 시 기상. 푼힐에 올라가서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했다. 사실은 네 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거의 한시간마다 한번씩 깨곤 해서 잠을 잔 것 같지도 않았다. 침낭에서 일어나서 손가락만한 꼬마 랜턴을 켰다. 방 안에 있는 화장실을 쓸까 하다가 옆방의 이스라엘 할머니 할아버지를 깨울 것 같아 공용 화장실로 조용히 내려갔다. 일층의 식당에 세면대가 있었다. 어젯밤엔 다른 모든 방이나 복도엔 불이 안 들어왔지만 식당만은 불빛이 있었는데 지금은 식당도 아주 깜깜하다. 랜턴 불빛에 의지해 고양이 세수를 했다. 내가 세수하는 소리에 깼는지 포터들이 자는 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수를 하고 방에 가니 옆방 부부도 벌써 깨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일층으로 내려갔다.

 가네쉬도 곧 나왔다. 다른 포터들도 자기 트레커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여니 터프한 바람이 불어왔다. 역시 춥긴 춥구나. 파카를 껴입고 뒤뚱뒤뚱 가네쉬를 따랐다. 롯지 뒤쪽으로 푼힐로 올라가는 길 같지도 않은 샛길을 걸었다. 산 속은 완전히 깜깜했고 가네쉬가 뒤에서 랜턴을 비추며 따라왔다. 가네쉬랑 단둘이 걸어가며 조금씩 무서운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길이 모아진 곳에서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새벽에 일어나 푼힐에 올라가고 있었다.

 역시 경사가 급해서 조금 걸으니 금방 힘들어졌다. 잠시 쉬는데 한국말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맙소사, 한국의 혜초여행사에서 오신 트레커들이었다. 한국말이 너무너무너무 그리웠던 상황에서 정말 반가웠다! 기분이 완전히 업되서 올라가는데 휴..ㅠㅠ 금세 기가 꺾였다. 일출 보러 산책가는 코스쯤으로 상상했건만 의외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돌계단을 걸어야 했다. 올라가면서 차차 어스름한 빛이 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끔씩 뒤를 돌면 멀리 미명에 잠긴 봉우리들이 고요하게 펼쳐져 있었다.

 파카와 그 안에 껴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버리고 한참을 올라간 후 키 큰 나무들이 없어지고 거친 관목이 우거진 언덕길이 나타났다. 둥그스름한 언덕은 넓은 하늘과 마치 레고 블럭처럼 꼭 맞춰져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는 높은 전망대가 있었다. 이미 전망대 밑에는 트레커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고 티를 파는 작은 가게도 있었다. 가네쉬, 제비와 블랙티를 마시고 일출을 보러 전망대에 올라갔다.

 와!! 일순간 모두가 탄성을 올렸다. 첩첩이 겹친 산봉우리 가운데 해가 살짝 붉은 정수리를 드러냈다. 해는 아주 천천히, 천천히 올라왔고 나는 셔터를 마구 눌렀다. 그렇지만 단 한 장도 일출의 찬란함을 담을 수 없었다. 짙고 두껍게 산을 휘감은 운무 때문이었다. 붉은 빛도 푸른 빛도 모두 흰 빛에 막혀서 제 빛을 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보게 된 안나푸르나의 고봉들을 윤곽조차 제대로 가릴 수 없었다. 모든 풍경은 안개 속에 숨어버렸다. 안나푸르나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내려갔다. 이제 주위는 꽤 밝아졌고 싱그러운 고산지대의 아침을 즐길 수 있었다. 관목숲 사이에서 홀로 서 있는 랄리구라스를 발견했다. 사랑스러운 핑크빛 꽃송이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랄리구라스에 반해 한참 사진을 찍어댔다. 내려가는 길은 사람들이 적었다. 발걸음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경쾌했다. 

 고레빠니를 뒤로 하고 타다빠니로 향했다. 이제는 울창한 숲길이었다. 혜초여행사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같이 걷게 되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제는 내려가는 길이다! 절로 신이 났다. 가네쉬랑 툭탁거리면서 뭐가 그리 웃겼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밉고 귀찮다가도 웃겨 죽을 것 같고 너무 의지되는, 아니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친구. 한나절을 걸어서 목적지인 타다빠니에 도착했다. 

 옆 롯지에 묵는 한국팀이 저녁 먹으러 오라고 해서 갔더니 라면 넣은 부대찌개에 김치, 멸치조림까지 완벽한 한식상이 차려져 있다. 팩소주를 곁들여 먹으며 이야기를 들으니 미국에서 성공한 이민 1세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셨다. 몇천만원을 들여 여기 오셨다고 했는데 잘못 들은 건가?;; 그치만 그 분들은 5명이 한팀인데 8명의 한식 요리사+가이드+포터들을 거느리고 다니셨다. 초호화 트레킹이랄까;; 네팔은 럭셜이랑은 거리가 먼 나란데. 밥을 다 먹을 무렵 그 쪽 가이드가 오더니 우리 롯지에서 가네쉬가 부른다고 하는 것이었다. 가네쉬는 내가 옆 롯지에 밥 얻어 먹으러 간다고 할 때부터 살짝 화가 나 있었다. 숙소인 롯지에서 밥을 안 시켜먹어도 그 밥값을 내야 하는데(롯지가 거의 밥장사로 먹고 산다고 한다) 옆 롯지에 가서 밥먹고 오는 내가 영 못마땅한 것이다. 결국 그 등쌀에 우리 롯지에서도 밥을 시켜서 가네쉬랑 뗀바에게 먹으라고 줬다. 

 전날밤 고레빠니에서 카드마술을 보여줬던 앙도 우리 롯지였다. 앙, 뗀바 형제는 조이 커플을 안내하고 있었다. 밤이 깊자 앙은 옆의 히말라야 롯지에서 댄스파티를 한다고 같이 가자고 꼬셨다. 잔뜩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랜턴을 들고 히말라야 롯지로 갔다. 한창 흥이 올라 있는 롯지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공간이 반으로 나뉘어서 마을 여자들은 춤을 추고 관광객들은 그것을 보면서 즐기고 있었다. 마을 여자들은 다같이 전통 노래를 합창했고 돌아가면서 나와 춤을 췄다.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 노래와 춤. 우리가 자리를 잡자 한 여자 아이가 와서 꽃목걸이를 걸어주면서 돈통을 내밀었다. 어리둥절해서 가네쉬를 보니 기부금을 내야 하는 거라고 했다. 가네쉬에게 돈이 없는데? 하니 한숨을 쉬며 내것까지 돈을 냈다. 잠시 후 이제는 여행자들이랑 같이 춤을 추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내 상상 속에서 외국인들은 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데- 자원자가 없었다. 여자 아이들이 관광객들이 않아 있는 테이블로 와서 한명씩 막 끌어내 가까스로 한 미국인 남녀가 나와 격렬한 막춤을 췄다. 그 다음에 또 아무도 나서지 않자 갑자기 그 아이가 내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거부하면 가던데 나의 거부는 완전히 무용지물이었다. 내게는 한참처럼 느껴진 그 시간 동안 아이와 건장한 네팔남이 달려들어 나를 완력으로 끌어내려 했다. 끝까지 빼자 그 남자는 내게 결혼했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들이 나를 놔주었다.

 그렇게 댄스의 밤은 흐물흐물 지나갔다. 우리 롯지로 다시 되돌아와 방으로 가는데, 다들 아까 춤추지, 하면서 아쉬워했다. 내가 춤췄으면 다들 재미있었을텐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심한 나를 어쩔것이야. 풀죽어서 내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가네쉬가 이불갖다줄까?하고 물었다. 갑자기 그 말이 왜 그렇게 고마웠는지..ㅠ 나는 방에 올라가 생각했다. 아까 춤을 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말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을텐데. 미국인 여자가 흔들어댄 모습이 떠올랐다. 고개를 흔들었다. 음. 그건 아니지. 이건 아주 살짝살짝 움직여줘야 되는 거야. 나는 방에서 혼자 덩실덩실 스텝을 밟았다. 이렇게 잘 출 수 있는데 아까 출 걸.. 다음번에 댄스 파티가 있다면 난 맥주 한잔 더 마시고 꼭 춰야지, 꼭! ^^
by Jung Min | 2009/06/20 00:12 | 2009 네팔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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